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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플렉스와 짠테크와 영끌의 삼위일체?

안녕하세요.
이번 업라이즈 블로그에 펜을 얹게 된 Jeremy입니다. 

Moonee의 강력한 요청을 받고 어쩌다 보니 수락을 하게 되었습니다만...
특별히 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일상을 흥미롭게 보내는 사람도 아니라서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Moonee에게 목줄이 잡힌 기분이로군요.


그래도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어 머릿속을 헤집어 봤는데,
마침 얼마 전에 친구에게 현 세태의 소비 문화와 관련하여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거기서부터 끼적여보려합니다. 


FLEX 세대?

: 근검과 절제의 미덕을 상실한 요즘 사람들

약 한 달 전쯤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오간 이야기입니다. 원래 술자리 환담이라는 것이 두서없이 흘러가는 게 보통이기도 하고, 말에 말이 꼬리를 물어가며 너나들이를 하다 보면 경중없는 넋두리도 열없이 뇌까리게 되기 마련인지라, 서로 객쩍은 흰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가 맥락없이 취중 세파 개탄을 늘어놓더군요.

‘다들 절제없이 소비하면서도 돈이 없다고 우는 소리를 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겉멋만 들었지 경제관념이 없다, 언제부터 오마카세나 호캉스나 해외여행 같은 것들이 거리낌 없이 일상적으로 소비할 거리가 되었느냐, 플렉스라느니 욜로라느니 그렇게 쓰고 싶은 데에 다 돈 쓰면서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한탄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요즘 세대는 과거와 달리 근검과 절제의 미덕을 상실했다......’ 등등.

요는 요즘 사람들은 이전 세대와는 특별히 구별될 정도로 유독 낭비벽이 심하다는 경제일간지스러운 이야기였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어디선가 들어보셨을 익숙한 이야기일 겁니다. 물론 익숙한 이야기라는 것은 그만큼 경험적 사례와 부합하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 아예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유감없이 지내는 사이에 구태여 어깃장을 놓으면서 심기를 불편하게 할 이유도 없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냥 적당히 응대하며 거쳐가는 수다거리로 넘겼지요. 기본적으로는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 하지만 마음으로 납득되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은데요...

: 반복되는 풍조와 짠테크 열풍

당시를 되짚어 보자면... 일감으로 든 생각은 이런 식의 풍조가 처음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사례가 있겠지만 00년대 초의 코스닥 버블이라든지 카드 대란 시절이 대번에 떠오르더군요.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든지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은 즐겨라’ 같은 카드 CF가 TV에 우글거리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용카드 불량자가 200만 명을 넘었던, 그리하여 개인파산이나 신용정책 등 여러가지 제도를 정비케 만들었던 악명 높은 그 시기 말입니다. 

 

이 시기를 되짚어 봤다면 20년 전에 비해 현 세태가 더 많은 지탄이 돌아갈 만큼 퇴락적인 소비 행태를 보인다고 확언하기는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예나 지금이나 미디어에서는 ‘요즘 사람들’을 철딱서니 없다고 단정짓고 몇 가지 자극적인 타이틀로 규정하면서 화젯거리를 생산한다는 것을 새삼 절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 든 의문은 과연 현시대를 과소비라든지 낭비벽 같은 키워드만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짠테크라든지 미니멀 소비라든지 여러가지 사치 풍조와는 상반되는 키워드들도 뉴스의 헤드라인을 뒤덮곤 한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이외에도 자산을 증식하고자 하는 재테크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특히 근년에는 영끌이라든지 밈주식 열풍과 같은 것들이 인구에 회자되곤 했고, 경제적 자유 같은 담론도 광범위하게 소비된 바 있죠. 아마 특출난 혜안이 없어도 근래의 경제문화를 단순히 사치의 만연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관점으로는 당근마켓같은 중고거래 플랫폼이 성장한 것을 설명할 수 없겠지요.

 

실은 이럴지도 몰라요.

: 플렉스와 짠테크와 영끌의 삼위일체

이렇게 놓고 보면 현재 각 개인들과 가계의 소비 행태는 사치론과 같은 것으로 해명할 수 없으며 오히려 절약이나 증식이나 투자 등등의 경합하는 가치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고리타분한 한마디 푸념으로 일축할 수 없는 복잡다난한 사정과 맥락이 세상 곳곳에 깃들여져 있으며 그것이 여러 상반되는 키워드가 변존하는 작금의 다채로운 사회상을 낳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렇게 표면적으로는 서로 상충하는 듯한 현상들이 실은 심층에서는 연속성 있게 작동한다는 생각도 해봄직합니다. 가령 짠테크 등의 절약, 자산 투자와 재테크, 과시적 소비 등은 완전히 궤가 다른 노선으로 여겨집니다만, 실상 일 개인이 저 세 노선을 병행하고 있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예컨대 극단적인 자린고비식 절약은 내가 원하는 나만의 취향을 반영한 상품을 ‘보복소비’하기 위한 극기일 수도 있고, 자산을 매수하기 위한 전략적 인내일 수도 있죠. 또는 한껏 끌어당긴 주담대 레버리지는 실질적으로 장기간의 강제저축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이외에 욜로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코인 뽐뿌질에서 쓴맛 봐서일 수도 있는 것이고, 10년 절약해서 부동산으로 플렉스하느니 당장 명품 구입해서 그걸로 플렉스하는 게 '가성비'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네트워킹을 위해서는 일정한 드레스코드 비슷한 외양을 연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요는 자기억제적인 근검절약과 과시적인 사치와 공격적인 자산증식은 생각보다 경계선이 희미할 수 있다는 것이죠.

궁극적으로는 이런 모든 것들은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내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데에서 추동력이 나온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동일하다 싶습니다. 만족이 안 되니까 절약 노가다로 절차탁마하고, 만족이 안 되니까 투자로 역전을 노리고, 만족할 기약이 없으니까 미래는 포기하고 현재에 안분지족하기도 하고.. 이렇게 놓고 보면 작금의 소비 문화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느슨함이나 나태함 같은 것이 아닌 듯합니다. 오히려 절박함과 적극성이 읽히죠. 서로 상반되는 듯한 여러 행위들이 실은 그렇지 않으며 되레 상반되기에 역설적으로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라는 하나의 폭넓은 일관성을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형태가 도피가 될 수도 있고 타개가 될 수도 있고 분노가 될 수도 있고 방향성은 여러가지로 뻗어나갈 수 있겠지만 결국 뿌리는 동일하다는 것이죠.

나아가 이런 불만족을 해소하기 위해 다들 변화무쌍한 트렌드에 기민하게 반응한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고요. 이것은 뉴스나 가십에 지나치게 휘둘릴 수 있다는 것도 암시합니다만, 한번 물꼬만 터지면, 솔루션만 명확하게 제시되면, 시야 안에 타겟이 압축되어 있으면, 즉각적으로 금융 서비스 소비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봄직하지요.

이 지점에서 바로 업라이즈 같은 회사의 존재의의가 있을 거라 보고요.

 

업라이즈의 고민이 향할 방향

: 사람들이 정말로 바라는 것

실상 ‘사람들의 소비가 과거보다 증가했다’라는 진술은 드러나 있는 표층적인 행위와 결과를 보고 내린 결론일 뿐입니다. 표면적인 겉모습만 관찰하면서 일정한 잣대에 비추어 잘잘못을 가리고 명분을 논하는 식의 외재적인 접근인 거죠. 물론 우리는 남의 마음을 직접 꺼내어 볼 수 없고 타인의 생각을 머릿속에 들어가 엿볼 수 없기 때문에 외재적인 시각에서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필연적으로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는 가치판단으로 끝날 수밖에 없게 되죠. 이것은 ‘왜’가 빠져 있기에 불충분합니다. 왜 어떤 사람이, 일군의 사람들이 그렇게 움직이는지를 해명하지 못한 채 잘했다 못했다만 논하고 있다는 것이죠. 진짜 설명은 어떤 욕망으로, 어떤 동기로, 어떤 과정을 거쳐 저 사람이 저렇게 행위하고 있는지까지 인식을 뻗는 것이라 봅니다. 상대의 입장에 서서 어떤 이유로 그 사람은 그렇게 행동했을지를 내 일인 것처럼 반추해 보는 것이죠. 이것을 누군가는 감정이입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추체험이라고도 할 것입니다.

때로 배달에 돈을 낭비하기도 하고, 때로 각 커뮤니티의 핫딜 게시판을 돌면서 염가에 사재기를 하기도 하고, 때로 무소유 챌린지를 하며 허리띠를 조이기도 하고, 때로 틱띠기에 열을 올리기도 하는 것이 지금의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라면, 그리고 이런 복합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사람들의 금융적 요구란 것이 강력하게 존재한다면, 그것이 옳냐 그르냐를 논하기 이전에 그것이 어디에서 나온 요구이며 이것을 사회적으로 얼마나 잘 실현 시켜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쪽이 좀 더 생산적인 방향일 것입니다.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고민도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고요.

이토록 선명한 사람들의 욕망이 왜 불만족상태로 남아 있는지, 우리의 잠재적 고객층이 될 사람들이 정말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근본부터 파고 든다면 충분한 효용과 사회적 쓸모란 것이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현재 업라이즈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들도 넓게 보면 이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생각되고, 그에 건설적으로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현재 회사에 대한 느슨한 생각입니다.

 

중언부언 요지가 불분명한 이야기를 다소 에둘러서 끼적였습니다만, 현명하신 업라이즈 독자들이 행간을 따라 선해해주실 것을 믿으며 이 정도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